담쟁이
겨우내 담벼락에 죽은 듯 붙어있던 담쟁이 가지 몇을 얻어왔다. 화분에 담아 따듯한 거실에서 며칠 정성을 들였더니 생기없는 작대기에서 새순이 돋았다. 살았다. 거실에만 갇혀있는 게 미안해 햇볒을 보라고 발코니에 내 놓았는데 어느 밤에 다시 거실로 들여놓는 걸 잊었다. 그 밤에 밤새 봄비가 눈으로 변했고 온도는 영하로 떨어졌다. 아뿔싸, 다음날 보니 봉우리가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봄눈 보다 더한 […]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빛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어떤 별들(행성)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나도 세상이 내어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볼품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볼품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이곳에서 나같은 하찮은 존재가 무얼 이룰 수 있을까 회의에 빠져들 때가 어디 한두 번일까. 아이들에게 변화는 있을까. 나에게
두 세 명의 눈이 서로를 향해 반짝거리면 손을 들고 묻는다. 화장실 가도 되나요? 옆에 있던 아이들도 손들고 묻는다. 화장실 가도 되나요? 물 마시러 가도 돼요? 나머지 아이들도 손들고 묻는다. 물 마시러 가도 돼요? 수업에 들어오면 왜 오줌은 꼭 여럿이 동시에 마려운 것인지. 왜 갈증은 동시에 생기는 것인지. 그냥 밖에서 놀면 되지 왜 피곤하게 꼭 수업에
집을 나서는데 길가에 세워둔 내 차 범퍼 모서리가 긁혀있는 걸 발견했다. 사과하는 글귀와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종이가 windshield wiper 창 와이퍼에 꽂혀있었다. 한편으론 화가 났지만, 또 한편으론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래서 차 긁히는 것 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워낙 긁히고 범퍼가 나가고 험한 차들이
영어 수업을 하려고 주욱 훒어보니 2학년부터 4학년 여자아이들이 주를 이루었다. 아이들은 대략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알파벳을 (상대적으로) 많이 아는 그룹과 알파벳을 거의 모르는 그룹. 마침 아내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직 오지 않아서 알파벳을 모르는 저학년 아이들을 아내에게로 보냈다. “M, 너도 쏘눈 에제(언니, 이모, 아줌마를 지칭함) 에게 가서 알파벳 배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앞에 앉아있는
하교길 3학년 여자아이들과 마주쳐 인사 나누었다. 세상에서 가장 훈훈한 인사법을 가진 민족을 꼽으라면 3학년 여자아이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품에 쏘옥 안기는 녀석들 얼마나 귀여운지. 아마 이번 학기 스케줄이 우리와 가장 잘 맞아 수업에 참석하는 수가 제일 많은 학년이다. 그래봤자 10명 남짓하지만. 그 사랑스런 민족의 무리가 학교 앞에서 집으로 가던 길을 돌이켜 우리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오늘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사랑의 서약. 다들 턱을 괴고 넋이 나간 듯 감상하데…. (믿거나 말거나.) 내일 기타 가지고 올 거라니까 애들 신났다. 사실은 … 내가 더 신났다. 2019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