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즈니

하교길 3학년 여자아이들과 마주쳐 인사 나누었다. 세상에서 가장 훈훈한 인사법을 가진 민족을 꼽으라면 3학년 여자아이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품에 쏘옥 안기는 녀석들 얼마나 귀여운지. 아마 이번 학기 스케줄이 우리와 가장 잘 맞아 수업에 참석하는 수가 제일 많은 학년이다. 그래봤자 10명 남짓하지만. 그 사랑스런 민족의 무리가 학교 앞에서 집으로 가던 길을 돌이켜 우리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우리가 배정받은 교실은 아직도 수업 중이었고 다른 교실엔 9학년 학생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그 교실로 들어가길래 9학년 아이들에겐 미안했지만 수업을 위해 따라 들어갔다. 결국 수업을 위한 미팅이 있다는 핑계를 대는 9학년 아이들의 말을 받아들여 곧바로 반을 나왔지만 (자칭)눈치 9단인 나의 레이다망에 몇 아이들의 눈웃음을 주고받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는 수 없이 교실 밖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아이들이 나오고 우리가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갔다. 수업 중간에 친구들과 어울릴 공간이 필요했을 그 아이들에게 좀 미안했지만 딱히 어찌할 수도 없는 일.

교실 한쪽에선 아내가 7, 8학년 서넛 데리고 한국어 수업을, 또 다른 구석에선 3, 4학년 꼬마들을 데리고 나의 영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날 처음 온 아이들도 있어서 이전에 공부했던 걸 잠시 복습했는데 처음 온 아이들이나 몇 번 참석했던 아이들이나 구분 없이 처음 듣는 것처럼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매번 복습이 복습 아니게 되는 이 상황은 어쩔 거냐.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몇 아이들이 한국어 수업도 있느냐고 묻는다. 예스! 하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데 이후에 모든 교실이 사용될 거라는 통보를 받고 하는 수 없이 오늘 수업은 여기에서 마무리 지었다. 

집으로 향하는 우릴 향해 4학년 K가 뛰어오더니 20솜만 달라고 손을 내민다. “20 솜은 왜?” 어이가 없어서 물었지만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쭈뼛쭈뼛) “마로즈니.” 하이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뭐래?” 차 안에 있던 아내가 물었다. “아이스크림 사 먹게 20솜 달래.” “절대 안 되지” “그치, 20솜은 나도 안돼. 우리가 데리고 가서 사주자”, “거 좋다, 오늘 수업도 일찍 마쳐 미안한데 아이들 다 불러다 아이스크림 쏘자” “오케이” 그렇게 학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다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돈 달라고 손 벌리는 아이의 버릇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아내의 말도 동의는 되었는데 누를란 바이케 (아저씨, 삼촌, 오빠를 지칭함)를 그만큼 가까운 사이로 인정해 준 걸로 받아들였다. K가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아이크림 사게 돈 달라 하겠는가? 아빠나 바이케한테 부릴 어리광을 누를란 바이케에게 부렸다는 사실이 오늘 나의 행복지수를 한껏 올렸다. 

장담컨대 마로즈니 소문이 퍼져서 내일 수업 시간엔 더 많은 아이들이 온다에 20솜 건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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