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누를란 바이케와 노는 게 좋은 거야

영어 수업을 하려고 주욱 훒어보니 2학년부터 4학년 여자아이들이 주를 이루었다. 아이들은 대략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알파벳을 (상대적으로) 많이 아는 그룹과 알파벳을 거의 모르는 그룹. 마침 아내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직 오지 않아서 알파벳을 모르는 저학년 아이들을 아내에게로 보냈다. “M, 너도 쏘눈 에제(언니, 이모, 아줌마를 지칭함) 에게 가서 알파벳 배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앞에 앉아있는 M을 보고 알았다. 얘들은 공부에 관심 있는 게 아니라 누를란 바이케 (아저씨)와 노는 게 좋은 거라고.

영어 수업을 마치고나면 몇 아이들은 한국어도 공부하자고 한다. 처음엔 공부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네라고 생각했는데 수업을 진행해보면 그게 아닌 걸 눈치채는덴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딱히 놀게 별로 없는 동네 아이들에게 누를란 바이케와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은 거다. 

그럼에도 수업에 꾸준히 오는 아이들은 몇 안 된다.  집에서 따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전무하다는 걸 몇 개월째 같은 내용을 되풀이해도 처음 배우는 것처럼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고 알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 라고 위로는 하지만 쳇바퀴 돌듯 여러 대 대물림되었을 패턴을 벗어날 길은 이것 밖엔 없어 보인다. 아내와 항상 고민이다. 가정에서부터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참 어려운데, 학교조차 공부할 분위기가 아닌데, 그 일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는지. 센터가 생기면 그게 좀 더 가능해지겠는지.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매번 행복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불가능에 가까운 숙제를 받아든 기분이다.

오늘도 그 무거운 숙제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여전히 꽃이 피었고, 저기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흰 눈 덮힌 천산산맥의 풍경은 내가 고향을 떠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머나먼 미지의 나라에 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세월은 가고 누를란 바이케와 노는 게 좋았던 세대도 교체될 거고 그 누를란 바이케는 흔적도 없이 지워지겠지만, 가뭇없이 지워질 누를란 바이케를 통해 이 아이들 마음속에 아름다운 흔적이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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