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값 2,950원

봄의 문턱을 몇 번 넘나 했더니 다시 겨울에 발목을 잡혔다. 단디 싸매고 나갔는데 두터운 옷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담주 목요일까지 쌀쌀한 날씨가 계속된다.

집에 들어가는 늦은 오후 6시, 저어기 노상 좌판대에 할머니가 앉아 무언가를 팔고 계셨다. 이런 분들은 필요한 게 없더라도 팔아드리고 싶어 다가갔다. 

“날씨가 추워졌어요. 할머니 뭐 있어요?”

좌판대 위 널부러져있는 정체불명의 물체들 사이로 유심히 보아야 보이는 세가지 품목을 팔고 계셨다. 땅콩, 국시(뽀빠이 과자,) 차이(차, tea). 몇마디 나누는데 이 할머니 나보다 귀가 더 어두우시다. 

“땅콩, 국시, 차이 하나씩 다 주세요.”

“땅콩 이 종이에 넣어줘도 돼?”

“상관 없어요.” (그 두꺼운 종이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는데…큭큭)

모두 220솜, 원화로 2,950원 나왔다. 

할머니 호구조사 결과, 길 바로 앞에 가족과 함께 사신다. 자녀가 넷이고, 연세는 이제 81세. 우리 엄마는 40년생이시니까 살아계셨다면 … 배가 고파서인지 추워서인지 헷갈렸다. 음… 71살? 되셨겠네.

말하고 나니 좀 이상했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하랴.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 할머니 헤쳐오신 세월의 풍파만큼 얼굴에 주름이 여든하나 패여있었다. 생김새도 정서도 한국사람 너무 닮은 할머니 어깨를 꼬옥 안아드리면서 말했다.

“여기 지나가다 할머니 보면 또 살게요.”

언 얼굴을 옷 깃 안으로 잔뜩 움츠리고, 시린 손으로 땅콩을 들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만은 행복했다.

‘어라, 내가 쉰둘인데 엄마가 웬 71살? 나도 참….

엄마와 동갑이시네.’

엄마가 그리워졌다. 살아계셨다면 저 할머니 정도 늙으셨을까? 할머니에게서 자상한 엄마의 향기도 느껴졌고…

노동자들의 삶을 봐도 그렇고 좌판상인들이나 영세상인들을 봐도 그렇고. 아무리 셈을 해봐도 이들은 가난을 떼어낼 수 없는 운명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을 이길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노동이 자본을. 뭐, 꼭 자본을 이겨야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니 전능자의 세심한 손길이 붙들지 않는다면 이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누가 버텨내랴.

어느 누군가는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고. 어느 누군가는 그분의 세심한 손길이 되고. 그렇게 우린 사랑하고 세상은 돌아가는 거 아니겠나. 자본을 이겨야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건 너무 쉽지 않나. 그 마수에 걸리지 않는 누구나 전능자의 세심한 손길이 될 수 있다.

행복의 값, 2,950원 + 엄마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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