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AI의 시대가 도래했다. AI가 삶의 질을 향상하리란 기대와 함께 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어떻게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까? 인간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도약할 수 있을까? 23년 6월 미군은 공격 금지명령을 받은 AI 드론이 조종자를 방해요소로 판단해 제거했다는 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물론 실제가 아닌 가설 실험이었지만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AI의 위험성을 다룬 미 국무부 용역 보고서에는 프로그램된 목표 달성에 방해요소가 된다 판단되면 AI가 인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AI 가 결코 넘보지 못하는 삶의 영역은 어딜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변화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침은 경험하겠지만, 처음 가졌던 두려움과는 달리 인류는 AI가 포즈한 위협을 극복해내리라 긍정하게되었다.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성질이 그걸 가능케한다고 믿었다. 인생과 인생이 마주치며 만들어내는 여러 갈래의 음들을 어떤 방도로 AI가 모방할런가? 결핍에서 나오는 겸손의 미덕을 감히 상상이나 할까? 인간의 삶이 내어주는 깊은 고뇌에서 나오는 한 숨을 AI 가 어찌 이해 할런가? 삶의 골짜기를 지나며 겪어야만하는 눈물을 어찌 AI가 만들어 내랴. 슬픔을 공감할 수 있겠는가? 아픔을 느낄수 있겠는가. 눈물을 흘릴 줄 알겠는가? 측은히 여길 줄 알겠는가? 고통이나 고난등으로 표현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의 무덤에서 꽃피는 사랑의 고귀한 승리를 AI가 모방할 수 있을까? 사랑으로 말미암는 희생의 그 숭고한 가치를 흉내낼 수 있을까? 내가 널 좋아하고 널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우정을 모방할 수 있겠나? 감사와 신뢰는 어떻고. 환희와 비애는 어떤가. 기계적인 반응을 넘어서는, 눈물과 웃음이라는 찌릿하고 짭쪼름한 감정을 정말 알겠는가.

AI가 결코 넘보지 못하는 삶의 영역은 인간미 아닐까? 초 단위로 정보를 습득하고 무서우리만큼 빠르게 인간의 범주를 침범해 들어오는 AI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인간이 원래 의도되었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원래 지어졌던 신의 성품으로 회복될 때에 AI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너를 돕고 서로를 세우는 도구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인간미를 저버리고 내가 널 지배하는 도구로 “나”라는 제국을 세우고, 널 파멸하고 복종시키고 종속 colonize 시키는, 네 위에 군림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 AI 로 인해 너의 미래 뿐 아니라 결국 나의 미래도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AI는 인류가 동류 인간을 정복하는데 사용되었던 총, 균, 쇠의 한 층 진화한 버전일 뿐이다. 인간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총균쇠로 말미암았던 인류 파멸의 속도보다 AI는 훨씬 더 빠르게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총 균 쇠도, AI 도 아니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할 것은 인간성을 잃은 인간 자신이다.

인간 문명의 시작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불의 흔적이나 돌도끼 흔적이 아니라 치유된 다리뼈라고 했단다. 약육강식의 야생의 세계에서 다리가 부러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다리뼈가 치유될때까지 받은 도움이 인류 문명의 시작이다. 약자를 돕는 인내심, 동정심등의 인간성은 정의로움을 구현키 위해 필요한 덕목이기 이전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최고의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의 미래는 안전한가? 우리 인류는 믿을만한 족속인가? 우린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인간 스스로에게서 찾아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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