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는데 길가에 세워둔 내 차 범퍼 모서리가 긁혀있는 걸 발견했다. 사과하는 글귀와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종이가 windshield wiper 창 와이퍼에 꽂혀있었다. 한편으론 화가 났지만, 또 한편으론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래서 차 긁히는 것 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워낙 긁히고 범퍼가 나가고 험한 차들이 즐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차도 그리 곱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에이 x 밟은 셈 치고 넘어가야겠거니 했다. 좀 난감했는데, 그건 누군가 긁은 후 자신의 연락처를 남겨두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락을 한다면 다시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는 고민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이 용감한 아내가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오늘 저녁 6시 30분에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6시, 6시 29분… 까지 시간을 확인하고 아마 연락은 오지 않는 걸로, 혼자 잠정 결론을 내렸는데 포기하지 않는 아내는 내가 직접 연락해보라고 연락처를 메세지로 다시 보내왔다. 전화해서 어떤 실랑이를 벌여야 할지?라는 막막함에 아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후 잊었는데 7시 20분 경에 아내가 기어코 그 남자와 통화를 했다. 그에게서 전화가 온 거다. 집 앞에 왔다고.
나가서 그 남자를 만났다. 난 이미 차 고치는 가격과 고치는 곳의 연락처까지 알아두었기 때문에 그 돈을 내게 지불하던지 아니면 body shop 에 직접 연락해서 흥정을 하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나가보니 조그마한 가방을 가슴께로 둘러멘 젊은 친구가 어둑해진 길가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어둠에도 우린 서로를 알아봤다.
신기하고 기특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19살 먹은 젊은 청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키국 최남단 시골 바트켄에서 비쉬켁으로 1년 전 혈혈단신 상경했단다. 현재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면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초보운전자라 차를 빼면서 자신의 오른쪽 앞 범퍼가 내 차 범퍼에 걸려 자신의 범퍼가 내려앉았다. 범퍼는 고쳤다며 보여주는데 긁힌 건 손보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일 년 전 상경해서 시장에서 물건 나르는 일 일 년하고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차를 구입해서 택시 영업을 막 시작한 터라 쉽지 않은 삶이라는 건 뻔했다.
제법 괜찮은 친구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내 차를 이렇게 긁어 놨으니 댓가를 치러야한다.
“내일 오후에 시간 되니?”
“내 차를 긁어 놨으니 내일 다시 만나서 네가 차 (tea) 를 사라.”
“운전 조심하고, 공부 열심히해라 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내일 만나서 따듯한 점심이나 사줘야겠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결코 쑥과 마늘을 (밥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순간순간의 유혹에 바른 결정을 내려야 되는 거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그렇게 내면 짐승의 본성을 거스르는 그런 (백일의) 순간이 모이고 쌓여 우린 그나마 (좋은)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게 아닐까.
꽤 괜찮아 보이는 이 친구와 악연에서 순식간에 좋은 인연이 되었다. 복된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