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한 그릇들을 찬장에 정리하는 걸 유난히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리보단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걸 더 잘하는 목표지향적인 아내의 속성이 큰 이유가 되겠지만, 그 사실을 앎에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릇 정리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어느날 부엌 찬장을 마주보고 서서,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난데없이 궁금한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응? 잠깐만….’ 무릎을 굽혀 23센티미터 낮추어 보았다.
세상에…. 23센티미터 낮은 세상은 내가 경험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당장 찬장안이 전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손을 뻗쳐 구석에 놓인 그릇을 잡는 일조차 아무런 일도 아닌 게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보이던 것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그런 신세계가 눈앞에 놓여있었다.
사람이란, 참…. 자기 눈높이에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거다. 고작 23 센티미터 그 한 뼘의 차이를 체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던 지난 23년의 삶이 온통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사려 깊고 이해심 많고 자상한 남편이었다는 23년 된 철저한 착각은 이렇게 한꺼풀씩 깨어지고 있다. 잘 안다고 자부했고, 더 나은 반쪽이라며, 나 자신의 일부라 여긴 사랑하는 아내와의 23 센티미터의 차이를 겨우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는 데 23년이 걸렸다.
피상적인 23 센티미터가 그러하니 생각과 경험과 삶의 궤도와 배경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얼마나 난해한 일일런가. 23 센티미터의 차이가 그 정도니 땅에서 하늘의 높이를 이해한다는 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겠으며, 하늘에서 땅으로 눈높이를 맞추신 그는 얼마나 대단한 낮추심이었는가.
영혼의 전향은 순간의 기적이지만, 성화의 과정은 일생의 과업이다 (Alan Redpath) 라는 말처럼 난 52년을 살고도 삶의 코너마다 복병처럼 기다리는 성화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23 센티미터의 차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도 성화라고 할 수 있다면.